우리의 노래가 이 그늘진 땅에 햇볕 한 줌 될 수 있다면.

노래가사 쓴 거 아닌가 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는데, 뚜비가 매우 좋아하는 전통주점 이름이다.
386 세대라면 저 술집 제목이 뭘 의미하는지 다들 아시리라 생각한다.

며칠 전(이라고 쓰지만, 사실 지난 달) 회사 홍보팀에서 연락이 왔다. 회사 사보에 매달 올라가는 맛집 홍보기사를 써 줄수 있냐는
부탁이었다. 맛있는거 먹고 돌아댕기는걸 좋아하는 뚜비는 흔쾌히 수락을 했다. 사실은 그보다 원고료가 더 탐났다는 표현이 옳을거다.

이 술집은 뚜비가 학생시절 상당히 자주 갔던 술집이며, 친한 친구들과 아지트로도 사용했던 집이다. 얼마 전 여기를 다시 간 것이
졸업하고 처음이니까 근 2년 만에 다시 간 것이다. 

내부는 전통주점 답게 전통 주막삘이 나도록 나름대로 잘 꾸며놓았다. 내부 자체는 그다지 넓은 편은 아니지만, 아기자기한 소품들로
분위기를 한껏 살리고 있다.
한껏 분위기를 살린 사장님의 센스가 일품이다. 특히 장구. 장구를 소품으로 쓸 줄이야....
이 집은 소품을 이용한 것 외에도 분위기를 살리는 것이 또 있으니 바로 음악이다. 전통주점 답게 전통 악기인 소금, 해금, 가야금,
단소 등으로 연주한 음악들을 틀어준다. 아, 오해는 하지 마시길.... 밀양 아리랑, 전주 아리랑, 최진사댁 세째딸 이런 음악은 아니다.
대신 귀에 익은 영화음악이나 옛노래, 예를 들면 Moonriver, Let it be, My heart will go on 같은 음악들이다.
보통 술집에 가면 이건 뭐 술마시며 담소를 나눌 수가 없을 정도로 쿵짝쿵짝하는 음악을 크게 틀어놓는데, 이 집은 그야말로
은은하게 귀에 퍼지도록 적당한 크기로 음악을 틀어놓는다. 뚜비가 이 집을 좋아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왔으면 먹고 마셔야 하는 법! 메뉴판을 펴보서 잠시 주춤했다. 아니, 어떻게 2년 전과 가격이 똑같지? 이래가지고 장사가 될라나?
사장님께서 말씀하시길, 주 고객이 학생들이라 더 비싸게 팔면 오질 않는다고. 그래서 가격은 그대로 두고 양을 조금씩 줄였다고 한다.
아무리 그래도 이 가격은 너무나 착하다. 참고로, 이 집에서는 전통주도 팔지만, 전통차도 판다. 단, 뚜비는 차는 마신 적이 없으므로
그 맛은 보장할 수가 없다. 대신 이집의 술 만큼은 뚜비가 장담하건대 가히 일품이라 할 만하다.
뚜비는 이 집에 오면 항상 시작은 대나무죽순주로 한다. 저런 죽통에 술을 담아 파는 가게는 많지만, 그 맛은 이 집을 따라오지 못한다.
이 집 죽순주는 무엇보다 그 향기가 매우 뛰어난데, 한 잔 입에 머금고 입 안에서 돌려보면 그윽한 곡주향이 입 안을 가득 채운다.
도수는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는데, 청하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한다. 하지만 술에서 청하처럼 알콜 냄새가 나지는 않는다.
그래서인지 처음오는 사람들이 저 향기와 맛에 취해 홀짝홀짝 대다가 자신도 모르게 취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안주는 해물파전. 이 집의 전종류는 평범한 전과 다른 점이 많다. 특징이 전을 부쳤다기 보다는 튀겼다는 표현이 적당할 정도로
전 전체가 바삭바삭하고, 식어도 눅눅해지지 않는다. 기름에 튀진 전이니 대신 살은 많이 찔 것이다. 먹기 전에 각오해야 할 듯.
그러나저러나 사장님 말대로 크기는 좀 줄어들 느낌이 든다. 예전 뚜비가 학생일 때는 저 접시를 다 덮을 정도로 큰 파전이
나왔는데, 조금 줄어든 걸 보니 양을 줄이긴 줄였나보다. 하긴 요새 물가가 하도 올라서 예전 크기에 지금 가격으로 팔면 본전도
뽑기 힘들거란 생각이 든다.
좋은 술에 좋은 안주, 이런게 풍류가 아닐런지. 이 날은 고독을 벗삼아 술과 안주로 저녁을 대신했다(혼자서 청승을 떨은 게지 ㅡ.ㅡ;;;).
크기는 줄었다고 하지만 혼자서 즐기기에는 저 파전은 너무 컸다. 결국 1/3은 남겼다는. 하지만 술은 부족해서 추가로 주문했다.
죽순주를 마시고 나면 거의 항상 국화주 아니면 매실주를 시키는데, 이 날은 매실주를 시켰다. 역시나 향기가 일품이며
약하게 들어있는 탄산이 그 맛을 더욱 돋구는 역할을 한다.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이 술을 추천하고 싶다.
이 집에 가면 한쪽 벽에 배규하 선생의 글씨가 있다. "여보시게 이 사람아, 뭘 그리 고민허나. 이 차나 한 잔 먹고 가시게."
이 집에 오면 항상 저 글을 마음속으로 되새기곤 했는데, 이날따라 더욱 저 글귀가 더 눈에 들어온다.
너무 바빠 차 한잔, 술 한잔 여유도 찾기 힘든 뚜비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여유일 것이기 때문이다.
빨리 여유가 생겨야 사람도 만나고, 그래야 여기 같이 올 사람도 만들고, 그래야 장가도.... 이게 아닌데.

시간이 된다면 전통주의 매력에 흠뻑 빠져보시길 바란다. 이 집에 와서 후회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기에(최소한 내 주변에는)
감히 강력하게 추천하는 바이다.
맨날 마시는 소주, 맥주 말고(부르주아들은 양주 마시겠지) 오랜만에 전통주 한 잔 마시며 자신만의 여유를 찾는 것은 어떨까.
그나마 술이라는 것을 통해 잠시나마 시름을 잊을 수 있다는 것은 신이 인간에게 준 최소한의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찾아오늘 길 : 안암역 3번 출구로 나와 아래를 향해 쭈욱 내려가다가 GS25시가 있는 골목으로 들어오면 됩니다. GS25시 맞은편
1층에는 돼야지라는 고깃집이 있고, 그 건물 2층에 "우리의 노래가...."가 있습니다. 참고로 저 3번 출구로 나와 한 20미터 정도
직진하면 고려대의 명물 가운데 하나인 "영철버거"가 있습니다. 기회가 되신다면 영철버거도 한 번 맛보시길 바랍니다.

by 뚜비 | 2008/09/22 00:23 | 食道樂, 음식, 맛집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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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대한독립군 at 2008/09/22 11:11
어디서 많이 봤다 싶었는데 학교 앞의 그곳이었군요; 약도 보기 전까지 '어라 어디서 봤는데'를 되뇌이고 있었습니다;
다음에 꼭 한번 가봐야겠군요. 잘 봤습니다 선배님!
Commented by 뚜비 at 2008/09/22 11:41
학교 후배님을 이렇게 또 만나게 되는군요. 아직 안가보셨다면 꼭 한 번 가보시길 바래요.
Commented by sonofspace at 2008/09/22 19:20
좋은 가게죠. 학교 다닐 때 생각나네요. 조용히 술 마시고 싶을 때 안성맞춤이죠. 단점이라면 가게 문을 좀 일찍 닫는다는 것...
Commented by 뚜비 at 2008/09/22 22:59
정말 조용히 술마시기 좋은 곳이죠. 혼자 술 시켜놓고 청승 떨어도 되는 분위기인지라. 사실 그런 사람도 종종 봤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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